미국의 이민 역사와 다문화정책 변천 과정

미국의 이민 역사와 다문화정책 변천 과정

미국의 이민 역사와 다문화정책 변천 과정

미국의 이민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이민과 관련하여 계략적으로 다섯 단계의 역사적 기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기간에서 이민은 당시의 미국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이민 역사의 다섯단계

첫 번째는 초기 정착민입니다. 17세기~19세기 초반, 영국인들이 주류, 그 밖에 유럽의 산업화에서 소외된 빈민들이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였습니다. 대량 이민의 시대입니다. 1820~1880년대, 무려 1,500만명의 유럽인들이 대거 이주합니다. 유럽의 실직자 증가와 미국의 노동력 부족이 맞물림. 천주교 신자와 중국인 유입되면서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반 천주교 정서 팽배하였다. 또 1882년 “중국인 배척법”제정 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이민자 홍수시대입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2,500만명의 유럽인들이 미국 이주하였다. 유럽의 남부지역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동부지역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에서 유입된 이주민들이 미국의 중서부 및 남부의 도시지역에 정착 하며, 산업 노동력을 제공 하였습니다. 1900년대 초 한국의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들은 언급한적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이민자 홍수 시대에 미국의 노동력 부족을 매우기 위해서 미국에서 요청한 것입니다. 1907년 미국과 일본 “신사협정”체결해 일본인들의 미국 이민 중단시킬 정도로 일본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네 번째로는 이민규제의 시대입니다. 1924년 “출신국적법”제정하여 이민자 총수 제한하였다. 기존의 미국 거주자 국적 비율에 따라 해당 국가의 이민자 수를 할당하였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1965년 이민 및 국적법 제정입니다. 1965년 에 개정된 법에 따라서 미국 이민정책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출신국적법을 폐지하고 동양계에 대한 차별철폐하고, 이산가족 재회와 미국의 노동력 충당을 기본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1967년 7월부터 실시된 이 법의 개정으로 인해 미국은 인구 구조상, 경제 및 문화면에서 변화가 일어나,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의 대규모 유입되었습니다. 2007년 미국 인구조사의 의하면: 백인계(66.3%),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계 등 소수인종(31.5%) 2050년에는 백인계가 50.1%로 줄어들고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계 등 소수인종 구성원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다문화정책 변천 과정

미국의 다문화정책 변천 과정을 살펴본다면, 1960년대 중반에 흑인민권운동 활발해지면서 미국의 문화의 본질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확대 되었습니다. 흑인 민권운동은 백인들에 의한 인종차별, 불평등 철폐를 위한 운동입니다. 이후 미국이 다문화사회로 이행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흑인 노예를 받아들여서 링컨에 의해서 1860년대에 노예철폐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1960년대까지 그 차별은 지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여성, 장애인, 소수인종 등)에 대한 백인주류집단의 인종주의에 바탕한 차별과 억압을 제도적으로, 실천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서로 다른 인종, 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 존중, 수용을 의도하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교육과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1990년대 다문화주의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사회적 정책적 관심 증가 하였습니다.

미국과 다른 다민족 국가의 차이점

미국이 다른 다민족 국가와 다른 점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은 하나의 언어 “영어”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같은 법, 경제, 정치 체계 유지 합니다. 상대적으로 사회통합력이 높은 상태를 유지 합니다. Melting pot(다양한 정체성의 융합을 강조), salad bowl(각 민족, 문화의 고유성을 지키면서 적절하게 조화되는 형태 강조) 합니다. 미국은 Melting pot에서 salad bowl로 변화되는 통합적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크다. 그러나 실제 이민의 역사나 정책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백인 중심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헌법상 인종차별 금지를 연방수정헌법 제 14조에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백분리정책을 1960년대까지 오랫동안 유지 했습니다. 흑백분리정책은 “분리화된 평등화” 정말 언어의 교묘한 표현이죠? 평등하지만 분리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버스, 화장실, 교회, 학교에서 평등하지만 따로 분리 하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정책이 1960년대까지 유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지역별 남녀성별에 따라서 분리해서 교육한다 하면 그것이 평등하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납득하지 않겠죠? 그러나 미국은 100년동안 흑백분리정책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1954년 브라운사건에서 흑백분리정책은 위헌이라 판결 되었고, 인종의 용광론(Melting pot)와 동화주의 정책이 시행되어 1960년대 이후 흑인 민권운동과 함께 샐러드 보울 정책과 함께 통합적인 다문화주의 정책이 시작되었습니다.

흑백분리정책 폐지의 대표적인 사건

대표적인 사건으로 로자 파크스(Rosa Parks)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이 유명합니다. 미국 남부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는 1900년에 공공운송수단에서 흑백분리를 규정한 시 조례를 제정하였는데, 이는 인종차별법인 짐크루우법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남부 알라바마 주는 루이지애나 폴로리다와 같이 흑인 노예들이 거대한 농장에서 공조한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이에 따르면 흑인과 백인은 같은 버스 내에서도 앉는 자리를 분리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버스 앞 네 줄은 백인전용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며 흑인들은 뒤쪽에 있는 그들만의 유색 칸에 앉을 수 있었다. 이에 흑인 지도자들, 특히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를 주축으로 흑인들은 집단 파업과 버스승차 거부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비폭력적인 시위를 전개하여 수많은 흑인이 시위에 참여하였고, 결국 1956년 6월 연방지방법원에 이어 같은 해 12월 대법원에서도 시 당국의 행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이끌어내었습니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역할은 민권운동의 분수령을 이루었습니다. 1963년 8월 전국에서 모여 든 민권운동 지지자 수십만 명이 수도 워싱턴에서 ‘자유와 직업을 얻기 위한 워싱턴으로의 행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행진에서 킹 목사는 링컨기념관 앞에서 유명한 ‘I have a dream’ 이라는 명연설을 했습니다. 다음은 킹 목사의 연설의 일부로서 인종차별 철폐와 인간의 평등에 대한 그의 열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틴루터 킹 목사는 16분정도 연설을 하였습니다. 이 연설이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세계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준 내용입니다. 나이를 보면 39살에 죽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 하였습니다. 마틴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신념은 비폭력의 진리와 무조건적인 사랑이 진실로 최후의 복음임을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일시적으로 패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의(正義)가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악(惡)보다 강한 이유라고 그는 말합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치열하면서도 온화해야 한다. 또한 이상주의자이면서도 현실주의자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비폭력 평화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킹목사는 암살됩니다. 인류문명의 현주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간디의 비폭력평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킹 목사는 1968년 백인우월주의자 제임스 얼레이라는 청년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그 뒤로 99년 형을 받습니다. 킹 목사가 죽은 지 약 30년이 지난 1994년 그의 생일은 미국 국경일로 지정되었습니다. 미국같은 문명국가에서 여러 지도자들 루터킹, 케네디 형제, 레이건 대통령이 암살 또는 암살 시도를 받는 것은 비극적인 일입니다. 인간문명의 현주소를 증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