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중국, 조선족과의 국제 결혼 현황

한국에서 중국, 조선족과의 국제 결혼 현황

한국에서 중국, 조선족과의 국제 결혼 현황
한국의 국제결혼이주여성의 가장 높은 비율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과 조선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제결혼출신국의 주요국가인 중국과 조선족의 문화적 요소와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주로 다룰 내용은 중국의 지리문화와 조선족 자치주 연변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알아볼 것입니다.

중국인, 조선족의 결혼이주자 통계

지금 전체 결혼이주자 24만명 중 중국의 조선족이 35% 중국인이 약 24%입니다. 이렇게 중국 출신들이 거의 60%를 점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중국 조선족이 35%입니다. 제가 들여다보니까 중국의 조선족이 약 200만명인데 20대 30대 여성의 약 3분의 1이 한국으로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단히 높은 숫자죠. 한 사회에서 20대 30대 여성의 3분의1이 왔다는 것은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조선족은 한글을 공식언어로 사용합니다. 신문, 잡지, 출판사,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 모두 한글을 공식언어로 사용하도록 중국의 자치법 조례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으로 많은 조선족들이 오게되니까 중국어를 쓰는 빈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합니다. 중국의 조선족은 해외동포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취업방문제로 한국에서 취업이 용이합니다. 한국취업열풍으로 송금을 하면 소득은 향상되지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이에따라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면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4위인 나라이고 인구는 약14억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GDP는 12조로 세계 2위이고 1인당 GDP는 8,500$입니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95배, 인구는 대한민국의 25배 1인당 GDP는 한국의 약 2.5분의 1입니다. 특히 연변족, 중국말로는 옌볜 주 조선족은 소수민족 중 소득은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러나 전체 중국에 비해서는 낮은 편입니다. 한국으로 노동력이 유출되고 결혼이주여성이 많이 나갔기 때문에 급격한 조선족 인구 감소로 그 자리를 중국인들이 채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연변주를 예전에는 간도라고 불렀습니다. 간도라는 용어는 한자로는 여러 가지로 쓸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이주 역사

우리나라 사람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말 철종, 고종 때입니다. 지도로 보면 크게는 북간도, 동간도, 서간도로 나타낼 수 있고 그것을 줄여서 보면 이렇게 나타나는데 현재로서는 길림성이라고 해서 그 중의 한 부분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별 헤는 밤, 서시로 유명한 윤동주 시인 또 통일 운동가였던 문익헌 목사, 우리나라의 저명한 성악가였던 오현명 선생 유명한 명태 노래 있지요. 이러한 사람들이 저명한 간도출신 인사들입니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이쪽 지역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일제가 이른바 토지조사사업을 강행함에 따라 농토를 탈취 당한 한반도의 농민들이 간도로 많이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1926년에는 간도 지방의 우리나라 사람의 호수는 굉장히 많아서 농토는 전체의 52% 그리고 평균 72%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토를 소유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종과 언어와 문화

중국의 인종과 언어를 보면 중국은 인구의 92%가 중국사람이고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선족은 그 중의 하나인 거죠. 중국은 소수민족에 대해서 자치구나 자치주를 설정해서 소수민족의 문화를 인정하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중국어는 표준어가 네 가지입니다. 굉장히 많은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130여개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전체 인구의 약 70%는 베이징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중국어는 음의 높낮이에 따라서 성조가 있습니다. 네가지 성조가 있죠. 성조에 따라서 뜻하는 바가 다릅니다. 한국어로는 ‘마’라고 발음하지만 성조에 따라서 각기 의미가 달라집니다. 또 한국사람이 듣기에는 성조에 높낮이가 있기때문에 많아 익숙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사회주의 국가로 종교를 엄격히 금하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중국인 10명 가운데 3명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 도교, 이슬람교, 천주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풍속은 서양 사회에서는 7을 행운의 숫자로 선호합니다. Lucky seven이라고 하죠. 중국에서는 ‘8’을 가장 선호합니다. 숫자 ‘8’에 대한 중국인의 선호는 매우 높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을때 ‘8’이 4개 들어가는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에 올림픽 개막식이 열릴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숫자 8과 복을 받는다할 때 복자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사람들이 폭죽을 잘 터뜨리죠? 그 폭죽을 잘 터트리는 것도 터트리는 발음이 중국의 복자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6’과 ‘9’ 또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반면 숫자 ‘4’는 불길한 숫자로 중국인들이 기피하는 숫자입니다. 그것은 한국하고 비슷하죠. 중국의 4와 죽을 사의 발음이 성조가 다를 뿐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한글에서는 4와 죽을사의 발음은 성조없이 오히려 더 비슷하죠. 그러니까 엘리베이터 올라갈 때 4층을 안쓴다던가 이런것은 한국이 중국보다도 오히려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죠. 그것은 중국과 한국이 비슷합니다. 한국의 중국 남성과 한국 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정의 예를 들겠는데 굉장히 한국 사회가 다문화에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성씨가 중국과 한국 발음은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습니다. 발음이 같은 경우는 ‘황’씨나 ‘정’씨나 ‘왕’씨 등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허우’ 씨나 이런 경우는 예를들면 그 자식은 가명입니다만 ‘허우민수’ 이렇게 발음을 하기가 쉽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진’씨는 중국은 발음을 ‘천’이라고 하는데 성씨를 ‘천’으로 등록합니다. 그러면 남편의 성씨를 ‘진’씨로 알고있던 일부 이웃들은 아이 아버지가 다른 사람인 걸로 오해한다는 것이지요. 엄마 성씨를 따라도 오해가 생깁니다. 대만인 ‘쉬’ 우리말로하면 ‘허’씨인데 결혼한 한국인 C 씨는 아이가 태어나자 자신의 성씨를 이러한 어려움을 피하기위헤서 한국인 성씨로 신고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 주변에서는 ‘미혼모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국인 남성과 한국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정의 자녀는 한국에서 약 7300명 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에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여기서 조선족들이 한국에 많이 옴으로써 연변자치주에 미친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연변지역은 한국열풍이 불었습니다. 2008년 시기에 중국 조선족 사회는 한국방문취업제 비자를 받기 위해서 매우 열풍이 불었습니다. 취업제 비자를 받기위해서는 실무한국어시험을 보게되어있는데요. 그 인터넷 등록을 둘러싸고 매우 붐볐습니다. 조선족 언론은 전쟁을 방불케 한 원서접수, 하늘의 별따기’등으로 보도했습니다. 1990년대 초 중국 정부에서는 전면적 개방개혁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조선족 사회는 급격하게 한국으로 떠나는 인구이동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에 돈벌이를 떠나는 ‘한국바람’, ‘서울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5년간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총 수는 35만명~40만명입니다. 약 2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조선족의 해외진출대상국중에 한국이 가장 많고 조선족 전체인구의 약 ¼정도가 한국에 가 있습니다.

조선족 사회의 한국바람 영향

그동안 조선족 사회의 한국바람은 조선족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긍정적인 면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약 30억 달러의 사회적송금을 통해서 연변에 경제적 활력을 주었습니다. 반면 부정적인 역할은 중국과 한국의 이산가족 문제, 부모의 이주로 남겨진 자녀들의 교육심리문제, 조선족 여성들의 국제결혼, 과소비, 조선족 농민의 황폐화 내지 조선족 사회의 해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족 농촌마을들은 조선족 농민들이 도시로 진출되고 한국이주노동으로 탈농화, 황폐화, 고령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조선족들의 주택, 경작지는 본지방이나 타지방에서 들어온 중국사람들에게 매재되거나 소작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60년대 7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떠난 그러한 현상을 연상하면 되겠습니다. 연변은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 자치주입니다. 총인구 220만명 중 조선족 인구가 83만명으로 총인구의 37%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또 국제위장결혼 사례같은 사례도 있습니다. 브로커를 통해 국제위장결혼, 한국에 시집간 딸의 가짜 부모초청 등으로 인민 중국화로 7-8만 위안의 이주비용을 부담하면서 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2000년 당시 한화와의 환율차이가 커서 한국에 가면 1년만 일하면 이주비용을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농민들은 마을 내에서 이자 돈을 꾸는 방식으로 한국이주비용을 해결했다. 또 취업사기로 큰 빚을 진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이주취업에 성공한 행운아나 한국초청사기를 당해 패가망신한 사람이나 가족구조에 큰 변동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에서 불법체류 신분으로 취업하다가 붙잡혀서 강제추방을 당한 사람들, 한국인과의 위장결혼이 발각되어 강제추방을 당한 사람들은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거액의 출국비용을 갚지 못하고 오히려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가려고 브로커한테 선금을 주었다가 출국하지도 못하고 돈을 사기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국제위장결혼도 있었습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여성의 가짜 어머니 신분으로 한국에 이주해서 불법체류자로 전락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국제결혼을 통한 합법적인 신분을 얻기 위해 마을에 남아 있는 남편에게 이혼수속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남편도 한국여성과의 국제위장결혼으로 한국에 와서 이주취업을 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중국의 접경지역인 중국 지린성,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많은 마을이 청년층이 이탈되서 유령마을로 변했습니다, 이런 사진을 보면 굉장히 황량한 느낌이 들죠.

조선족의 결혼이민 요약 정리

한국의 국제결혼이주여성중 거의 60%가 중국출신입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 조선족 출신입니다. 젊은 여성의 거의 1/3이 한국으로 결혼을 왔습니다. 취업방문제로 온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젊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한국으로 왔습니다. 중국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 매우 크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들은 전혀 도외시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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